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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것인가

하림산책-박하림<수필가 / 전 (주) 휴비츠 고문>
2020년 중반인 이 시점에서 과거 80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조선왕조가 얼마나 수치스럽게 5백 년 사직을 마감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사고나 인식 중에 가장 흔한 경향이 과거지사를 경시해 온고지신(溫故知新)하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들 과거란 지나간 것으로 연연해서는 안 되며 과거 때문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갓은 쓸모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옳지 못하다. 과거와 무관한 현재란 없다. 역사는 과거지사의 기록이며 증언이다.

동시에 현재 누리는 모든 성과는 과거라는 씨앗의 열매다. 조선왕조의 몰락이라는 근세사를 뼈아프게 교훈삼지 않음은 미래에 과거처럼 같은 굴욕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음과 같은 과거지사는 기억하되 필요할 때마다 회상해 교훈 삼아야할 것이다.

아주 멀리 660년 8월에 금강하구인 합수머리 백강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나당연합군한테 패한 백제가 망함으로써 근대사의 한 비극의 장이 열렸다.

백제의 분국(分國)이었던 왜국은 10년간 백제의 수복을 도모하다가 실패, 일본이라는 국호를 선포하고 독립했으며, 백제 의자왕의 이복 아우인 교기 대군이 정변을 피해 왜국으로 망명했다가 덴지(天智 천지) 천황으로 등극함으로써 망국의 한은 조상의 나라 한반도의 수복이라는 꿈으로 깊이 뿌리박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비극적 맥락에서 일본의 조선 침략사가 전개되었다.

그 첫 침략의 마수가 1592년 일본이 무도한 방법으로 일으킨 임진왜란이었다.
7년 가까운 전쟁으로 조선은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가노(家奴 종) 문서의 소실로 사회제도가 무너졌고 전사로 인한 노동인구의 부족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니 정상적인 농사를 짓기까지 무려 1백년이 걸렸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조선왕조에 두 번째로 침략의 마수를 뻗힌 게1904년 맺은 한일의정서였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조선을 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맺었으니 그건 조선 침략의 조아(爪牙 마수)를 숨긴 간특한 외교협약이었다.

그리고 1910년 조선왕조를 회유하고 겁박하여 <을사늑약>을 맺었으니 일본은 조선을 거저 합방하는데 성공했다, 그게 이른바 <경술국치 庚戌國恥>인데 그로써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조선은 망하되 치욕스럽게 망했다. 1895년 8월 범궐한 일본 사무라이들에게 왕후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 사건이 일어났다.

그 맥락에서 1910년 8월의 한일합방이 이뤄졌다. 나라를 백주에 도적맞은 기막힌 일이 벌어졌는데도 분연히 칼을 들고 대항한 사람 한 사람이 없었고, 치욕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는 이 하나가 없다는 현실을 비웃어 일본군사령관 데라우찌는 조선에는 우국지사 하나가 없다고 조롱했다.

8월을 맞을 때마다 우리가 일본한테서 저런 멸시를 아직도 받고 있지 않은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36년간이나 받는 동안 임진왜란 때보다 훨씬 철저하게 수탈당하고 역사와 문화를 유린당했다.

그러므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일으켜 결국 미국이 패전하게 만든 태평양전쟁 덕분에 일본의 종살이를 끝내고 1945년 8월 독립한 것은 천우신조이었다.

저 모든 기구한 우리나라의 과거라는 게  남이나 호랑이 담배 먹든 까마득히 먼 옛날이 아니고 지금 생존하는 80대 연령층이 치른 일로 결코 먼 과거지사가 아니다.

때문에 과거를 앞으로 연결, 70년 내지 백 년 앞을 연대기로 그려볼 경우 우리 손자나 증손자의 삶이 그 중심이 될 것이므로 우리가 요원한 미래를 걱정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하면 우리가 현재의 우리 형편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장래에 커다란 암초가 될지도 모를 문제나 과제가 무엇인가 궁금하고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가는 문제성 과제는 장차 누가 무엇으로 돈을 벌어 이 나라와 국민을 먹여 살릴 것인가 하는 실로 심각한 의문이다.
큰 수레(대승)를 탈 줄 모르는 정치인가?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대장부 정치인도 없거니와 그야말로 백년 앞을 내다보는 비전을 품는 그릇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명한 통치자라도 5년 집권으로 국가 백년대계의 초석을 놓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다 우리나라는 무능한 통치자나 허구한 날 싸우는 국회가 국가 장래를 망친다는 원성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우리 정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는 하수다. 

혹시 신물 나는 무슨 이념이나 주의, 예컨대 사회주의인가?
우린 공산주의의 비현실적 허상을 질리도록 보고 체험했으며 민주주의의 태생적인 모순 또한 실감하며 산다.

그리고 그 어느 이념과 체재가 행복한 삶에 적합한 가를 잘 안다. 그런데 미련하고도 촌스럽게 일단의 종북 좌경세력이 어이없는 주장을 일삼으며 반국가적 행동을 자행하고 있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에 심각한 걸림돌이다.

한심하게도 우린 무려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 지긋지긋한 이념뼈다귀를 섬기며 심지어 동족상잔까지 벌였다. 사상적 갈등이 얼마나 우리에게 비극과 불행을 안겼던가를 우린 과거 70년간 뼈저리게 체험했다. 또한 아직도 그 이념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가 21세기 부국강병책인가?
삼성 같은 보물 기업이란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70년씩이나 피나는 노력과 성공적 도전으로 저리 성장했는데 과연 우리나라는 미래에 저런 기업을 키울 수 있을까 심히 우려된다.

정치의 가장 큰 이상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 식(食)인데 기업을 격려하려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먼저 돈 버는 주의나 사상의 기조는 시장경제원칙임을 믿어야 하고, 반 기업정서를 완화시켜야한다. 

그 둘째 과제는 노동인구의 감소대책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인즉 연간 출생아가 50년 전의 100만 명에 비해 올해는 26만 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대체 장차 누가 돈을 벌거며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인가 암담하다.

근로자를 무한정 외국서 고용 해다 쓰겠단 것인가.
아이를 낳지 않음은 이 사회를 메마르게 하고 가정과 가족이라는 유대가 불안정함으로써 사회평화 유지가 어려워진다. 인구가 줄면 소비규모도 줄고 경제의 활성화가 둔화되며 계속 증가하는 노령 인구를 먹여 살리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현 추세로 라면 45년 후인 2065년의 우리 생산연령인구의 비율이 46%로 떨어져 OECD 국 중에 가장 낮을 전망이다. 2017년만 해도 73%로 가장 높았다. 지금 이 난국에 임금인상을 그것도 25%나 인상하라 요구하고 나선 노총 같은 시대인식으로는 풀리지 않을 어려운 과제다.

생산인구의 급감은 사회보험 재정의 기반을 흔들 것이다. 저 출산으로 노동인구가 줄면 국민연금 등 보험료를 낼 인구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연금의 경우 20년 후인 2040년에 첫 적자를 내고 2054년도에 이르러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건강, 공무원, 군인 등 8대 사회보험 모두가 현재 빨간불이다.

불과 8, 90년 전에 무력으로 나라가 망했듯이 앞으로 70년도 되기 전에 보험료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보석 같은 대기업을 곤경 속으로 몰아  넣으려는 식의 기업정책으로는 국가 장래가 어둡다.

우린 장차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고 민주국가로 잘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 가지 궁리를 지혜롭게 해내야 한다.

그건 무엇으로 누가 돈을 벌어 이 나라를 먹여 살릴 건가와, 장차 노동인구의 증가를 어떻게 촉진할 것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어떻게 만들 건가를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그런 책임의식이 결여되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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