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힘겨운 여름을 맞고 있다. 말복도 지나고 처서까지도 넘어 계절적으로는 가을이라는 신호도 받았다.
그러나 늦더위의 위력도 가질 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제 여름이 물러날 때이건만 아직도 그늘진 곳이 그립다.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인지 여름하면 덥고 짜증스러운 생각부터 떠오른다. 환경이나 직업, 생각에 따라 더위를 느끼고 이겨내는 방법과 정도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여름나기는 바다도 좋고 강변도 좋지만 뭐니뭐니 해도 산만큼은 못 따라갈 것 같다. 산수가 화려한 곳 거기에 암자라도 있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산에는 맑고 깨끗한 물도 있고, 정화된 공기가 있으며 나무가 있고 여러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자연의 혜택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시원한 것도 일등감이다.
필자가 여름철이면 가끔 찾았던 조그만 산사는 전라남도 나주 금성산 중턱의 암자인데 크고 유명하거나 경치가 뛰어난 곳은 아니다.
그러나 조용하고 멀리는 광주의 무등산이 보일 정도이며 특히 여름철이면 흐르는 물길을 이용한 5미터 높이 정도의 폭포수가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명소가 되었다.
무엇보다 필자에게는 중학교 3년간 죽마고우였던 친구가 주지스님으로 계시기에 부담이나 허물없이 가끔 찾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잠시 쉬었다 오는 곳이었다.
필자는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종교에 대한 관심과 마음, 그리고 약간의 설레임은 갖고 있다.
그래서 마음 가는 곳이면 교회든, 성당이든, 사찰이든 찾아가는데 친구의 사찰도 어느 때는 가족들과 또 어떨 때는 친구들, 제자들하고도 당일치기로 다녀오고는 한다. 멀지도 교통이 복잡하지도 않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산사는 신도들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가볍게 들릴 수 있는 휴양처다. 필자도 속세에서 찌들면서 속박된 생활을 하다보면 이것저것 귀찮을 때나,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회의가 들 때, 매사가 속 시원하게 잘 풀리지 않을 때문 친구 스님의 곁이 그립고 부러울 때가 있다.
또 여름철이면 그런 추억도 있지만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부처님 모시고 중생 구원의 길에 몰두하는 산사의 스님이 더욱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속세의 연을 잊고 하루 하루를 사심없는 생활을 하는 스님이 신선에 가까워 보일 때도 있다.
그렇게 친구이기도 한 좋아하는 스님을 만난 지도 오래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핑계로 소홀해진 스님과 작년에도 “한번 다녀가라”는 전화만 주고받고 말았다.
그간에 연락도 않고 무작정 찾아갔다가 부재중이라 그냥 오기도 했고, 여행 갔다가 오는 길에 들러도 봤지만 역시 출타중이라 못 만난 적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가고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서로 연이 닿지 않았는지 못 만난 것이다.
언제나 한적한 산사는 여름이 아니더라도 사계절 다 매력이 있고 기운이 있다.
유명한 사찰이 아니어서 복잡하지 않고, 자연 속에 흠뻑 젖어 물과 바람과 나무와 돌과 숲, 그리고 자연의 동식물들과 공존하면서 시원한 여름날의 풍경을 상상만해도 가슴이 설렌다.
언젠가 스님과 마주 앉아 그 옛날 옷가지 홀랑 벗고 산골짜기 물놀이 했던 일이나, 이웃마을 복숭아 서리도 했던 일, 메뚜기 잡아 들에서 구워먹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올해 여름도 몹시 더울 것이라는 예보가 빗나가지 않았다. 친구 찾아 폭포수 물로 정신 번쩍 차리고 여름밤의 별을 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지난 세월 낚아나 볼까?
여름 불더위에 노송의 그늘 아래서 시원한 산사의 바람 맞으며 스님과 차 한잔 나눌 날을 생각해본다.
그동안 더 많이 변했겠지, 친구야 보고 싶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