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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회장 |
1996년 대우자동차가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자동차 회사인 오토자즈(AUTOZAZ)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나는 그 회사의 공장장으로 발령이 났다. 구 소련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지 불과 몇 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3년간 생활하면서 공산주의 잔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폐쇄되었던 낙후된 공장을 재건하고 새로운 설비를 보완하여 동구권에서 제일가는 자동차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이 이루어져갈 무렵, 2,000년도 IMF 사태로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는 철수해야 했다. 생활과 문화, 언어가 다른 현지인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일하면서 그들과 정이 들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부 지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공교롭게 나는 최근 4년간 우크라이나 국경 인접 도시인 폴란드 루블린에 주재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면적이 우리나라의 6배 정도 되지만 인구는 4,400만으로 우리보다 적다. 우크라이나의 인당 국민소득이 4,840불(2021년 기준)로 동구권 최하위 수준이다.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와 함께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공산권과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중국과 자유진영의 접경 지역에 있는 것과 유사하다. 우크라이나는 NATO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할 경우, 러시아의 역사적 미래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직 간접적으로 반대해 왔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의 빌미를 주고 있는 결정적인 것은 약화된 군사력과 국론 분열이다. 1991년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 우크라이나의 재래식 군사력은 유럽에서 최강이었다. 당시 총 병력 78만 명, 전차 6,500대, 장갑차량 7,000대, 화포 7200문, 항공기 2,000대 등을 보유했다. 그러나 2005년 오렌지 혁명 이후 특별한 대책 없이 국방비 절감 등의 이유로 모병제 도입 등 군대 규모를 줄이는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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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코바 근교에서 한덕수회장 |
결과적으로 2014년 3월 11일, 크림반도를 상실할 위기에 직면할 때 우크라이나의 전체 병력 20만 명 가운데 즉각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6,000명이 전부였다. 전차, 장갑차 등 기동장비는 연료가 부족했고, 배터리는 제거돼 있었다. 600대의 항공기 중에서 가동 가능한 것은 100대 미만이었다. 유럽 최강 수준의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한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결국 2014년도 크림반도 위기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어떠한 조치도 실행할 능력이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련이 크림반도 침공 당시 친 러시아 성향의 국민들이 많았고, 특히 크림반도에 주둔했던 우크라이나 군인 대부분이 저항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군인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국론 분열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러시아로부터 분리독립된 이후 국론 분열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우크라이나 인구 중 약 20%가 러시아인이고 지금도 우크라이나어보다는 러시아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내가 그곳에 있을 때도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구 소련 시절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친 러시아계와 친 서방계가 항상 대립각을 세워 왔다. 이런 현상이 결국 2014년 친러 성향이 강한 크림반도가 국민투표에서 러시아에 편입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푸틴은 이러한 전례를 가지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는 오판을 했는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본다.
첫째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다.
국력의 기본이 되는 것은 경제력이다. 꾸준한 경제성장 없이는 국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수준으로 가봉만도 못한 상황에서 이제 36,000불로 360배가 성장한 반면, 우크라이나는 1993년 인당 국민소득이 2,156불이었는데 2021년 4,836불로 큰 성장이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경직된 사고다. 이 사회에서 훈련된 사람들은 시키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혁신이란 아이디어와 아이디어의 충돌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아이디어의 충돌 기회가 없으니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둘째는 국론 분열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온 국민이 하나가 되면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우크라이나는 국론 분열 상태에 있지만 젤렌스키와 같은 국가관이 뚜렷한 지도자가 있기 때문에 온 국민이 뭉쳐 무모한 푸틴의 침략에 대항하여 항전하고 있다. 국론 분열은 망국병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실험에서 실패한 사회주의를 책 몇 권 읽고 맹종하며, 민주화를 가장해 사회적 불만세력을 등에 업고 독버섯처럼 세력을 키워 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특히 인당 국민소득 1,400불로 세계 최빈국이며 빈곤과 만성질환으로 평균 기대 수명이 73세로 단명하는 나라를 만든 김일성 주체사상을 아직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회주의의 장점은 다 함께 잘 사는 것인데 실제적으로는 그 사회에서는 빈부격차가 더욱 심하다. 러시아에서 분리 독립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우크라이나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이러한 실상을 실제로 보았다. 국민들은 먹거리가 없는데 키이우 강변에는 호화별장이 즐비하고 고급 승용차가 수도 없이 들락거린다. 모스크바 근교에는 높은 울타리에 둘러싸인 수 백 평의 저택들이 즐비하다. 사회 주의는 평등이라는 허울 좋은 탈을 쓰고 국민의 땀을 쥐어짜 기득권만 배부르게 하는 허가 받은 강도 집단이다.
셋째는 국방력이다.
우크라이나는 국방비 절감이라는 막연한 목적으로 대안 없이 군대를 감축했었다. 국론은 분열되어 있고 군의 전투력은 약화되어 있고,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요충 지역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략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불량배들에게 얻어맞지 않으려면 힘이 있던가 힘센 형이라도 있어야 한다. 우리도 북한의 침공을 막으려면 그들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보유하던가 즉각 지원이 가능한 혈맹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시점에 한미일 동맹이 중요한 이유이다. 막연하게 미군 철수 운운하며 미국과 중국에 양다리를 걸치다 잘못하면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전략은 그 사회의 불만세력을 부추겨 친 공산 세력을 확장해, 국론 분열을 조장해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다음 침략을 시도하는 것이다. 국론 분열은 망국병이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된다면 어떠한 침략도 핵무기도 무섭지 않다. 후손에게 안정된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물려주려면, 입으로는 국민 국민 하면서 자기 야욕을 위해 국민을 분열시켜 선량한 국민들을 거리로 내 모는 적색분자들이 정치권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국론 분열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확고한 국가관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방을 튼튼히 할 능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한 선거제도가 확립되어야 하고, 온 국민이 당리당략을 떠나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