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9일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치러진 ‘도쿄올림픽’ 남자골프 경기에서 북아일랜드 대표 로리 맥길로이(Rory Mcllroy 1989~)선수는 4 라운드 내내 ‘No 모자’ 패션으로 경기를 했다.
그는 2010년 12월 라이더컵 대회에서도 후원사인 나이키 모자를 쓰지 않은 적이 있다.이유는 단지 머리가 작아서 제공되는 모자가 너무 헐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시니어 골퍼들의 눈에는 이 광경이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이 골프를 처음 배울 때부터 머리 속에 고착된 드레스코드는 반드시 깃이 있는 티셔츠에 모자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드레스코드란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
드레스코드(Dress Code)란 어떤 행사나 모임에 걸맞게 요구되는 규정된 복장을 말하며 복장규정, 복식예절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요구되는 복장을 갖춰 입지 않으면 그 장소에 입장할 수 없는 관습이 통용된다.
일반적으로 드레스코드 중 최고격식의 예복을 요구하는 ‘White Tie’에서는 턱시도와 조끼에 흰 넥타이,여성은 가슴선이 파인 Long gown에 팔꿈치까지 오는 장갑을 끼어야 한다.
그 3단계 아래인 ‘Business Casual’(Dress Casual)은 완전 캐쥬얼 직전단계로 남성은 넥타이 정장, 여성은 드레스나 정장(청바지나 아주 짧은 스커트는 안됨)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장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소속단체나 공동체에서 유니폼은 아니더라도 집단의 품위나 동질성 확보 자긍심 고취를 위해 드레스코드를 암묵적으로 강요 받게 된다.
이런 문화는 주로 서구에서 비롯 되었으며 그들의 모임 초대장에는 반드시 드레스 코드와 배우자 동반여부가 명기되어 있어서 이 부분을 잘 살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대부분 턱시도 정장이나 파티드레스 한 벌씩은 갖고 있거나, 쉽게 렌트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도 갖춰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에게는 이런 드레스코드 문화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17년 전 사업상 주요 고객인 미국인 바이어와 싱가폴-방콕 간 新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열차를 탄 적이 있다. 1880년대의 파리-이스탄불 간 초호화 특급열차를 모방하여 객실 인테리어를 호화롭게 하고 1박 2일 간 말레이반도 정글속을 달리는 슈퍼럭셔리 관광열차다.
저녁 시간에 정해진 만찬을 위해 식당칸에 들어 섰는데 몹시 당황스러웠다. 각종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가슴선과 어깨가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서양여자들이 앉아 있고 남자들은 나비넥타이 정장으로 앉아 있지 않은가. 어느 서양영화 속 파티장면 그대로였다.
드레스코드를 알고 있어서 나름대로 넥타이 정장을 하고 들어 갔지만 어쩐지 쑥스럽고 어색하고 초라하게 느껴져서 몹시 불편했다. 식사시간은 왜 그리 긴지 식사중간 음악과 쇼공연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드레스코드 문화쇼크라고나 할까.
골프의 역사는15세기부터 시작 되었지만 골프복장은 400여 년이 지나기까지도 평상복과 구분되어 있지 않았고 평상복 그대로 골프를 쳤다.
특히 여성은 20세기 중반을 지나서야 비로소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는 등 운동복 기능이 가미된 디자인의 골프복장을 입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골프가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사교스포츠로 자리 잡기 시작하는 1900년대부터 골프장을 고급 사교집단을 뜻하는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복장규정도 함께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규정이 바로 깃이 있는 티셔츠, 반바지에는 긴 양말, 그리고 썬바이저 또는 모자를 쓰는 것이다.
필자가 초보자를 벗어나 보기 플레이어로 자리잡은 4년차 쯤에 LG그룹 계열 명문 골프장 곤지암CC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국내 최고의 골프장으로 발돋음 하고 싶었던 이 골프장은 드레스코드도 엄격히 적용하고 있었다. 라운드 중 복장은 물론 클럽하우스 입장시의 복장도 현관에서 통제했다.마치 고등학교 시절 등교시 정문에서의 복장검사와도 같았다.
드레스코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당시의 필자가 상의 쟈켓을 입지 않고 클럽 하우스로 들어가려다 직원으로부터 제지 당했다. 난감해 하고 있던 중 현관직원이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항상 비치해 둔 쟈켓을 갖고 나와 임시로 입혀 준 후 현관문을 통과시키는 웃지 못할 경험이 있다.
골프 드레스코드 변천사도 살펴보면 참 흥미롭다. 17C 평상복, 18C는 단추가 많은 군복 스타일. 19C는 긴 쟈켓이나 뒷면이 길게 늘어진 연미복에 헐렁한 승마바지(Slacks)와 스타킹으로 장딴지를 감았다.
여성은 꼭끼는 허리에 콜셋트로 풍성하게 만든 발목길이의 스커트를 입었다.
1차 대전 후, 골프가 급속 보급되면서 스코틀랜드풍 쟈켓에 넥타이, 납작한 사냥모자 또는 모직 중절모가 드레스코드였다. 2차대전 후에 비로소 현대적 골프패션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실용주의와 편의성 심미안적 감각과 기능성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현대의 골프패션은 상상을 초월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여성 골프패션의 최근 트렌드를 보면 놀라움 그 자체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치마와 바지높이도 올라간다’는 말도 있다. 현대 골프패션의 컨셉은 품위보다 활동성을 더 우선시 해 왔었지만, 최근에는 더 발전하여 아름다움의 과시가 더 강조되고 여성미를 강조하는 ‘Sexy look’컨셉이 최근 골프패션의 대세가 되었다.
실제 요즘 골프장에 가보면 부쩍 늘어난 젊은 여성골퍼들이 초미니 스커트와 Hot pants로 노출경쟁의 무대, 패션쇼장을 방불케 한다. 반소매와 티셔츠의 깃은 사라진지 오래고 색상도 원색적이고 화려하다.
그런데 나이 불문 서로 노출경쟁 시선끌기 경쟁을 하다 보면 눈에 익어서인지 놀랍지도 않게 되고, 사회적 트렌드가 되어 결국 자기도 따라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패션의 속성이다.
사실 이런 과감한 패션의 유행은 경기 중 복장규정도 엄수해야 할 여자프로선수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위원들 마저도 드레스코드를 문제 삼아 이를 제재 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확실한 것은 여성골퍼들의 과감한 패션은 더 이상 경고의 대상이 아닌, 필드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강조되고 또 받아 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 주최 측의 입장에서는 경기의 흥행이 대단히 중요하다.
흥행 성공요소로 골프실력의 관전 외에 갤러리와 시청자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해야 하는데, 특히 아름다운 선수들의 멋진 골프패션을 보는 즐거움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즉 패션 스폰서들의 의류판매 촉진에 대한 기대를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토너먼트 흥행업자의 속사정이기 때문이다.
인기선수들의 눈에 띄는 패션은 다음날 매장에서 완판매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면 경기 주최측과 스폰서와의 밀접한 공생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 골프산업은 과거 15년 이상 과잉투자로 골프장들 대부분이 아사 직전에 처하여 사양산업으로 버림받아 왔다.
위기가 올수록 기회가 있다 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2년 전 찾아 온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들을 기사회생 시켜서 다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 시켰다.
또 대부분의 일반 패션산업이 코로나의 직격탄을 받았지만, 유명선수들을 앞세워 골프웨어가 주도하는 스포츠웨어산업은 코로나 특수로 급성장을 거듭하며 너도나도 골프패션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옷이 날개다’ ‘패션이 좋아야 스윙이 좋다’ ‘패션이 좋아서 골프를 친다’이런 말이 유행할 정도로 골프패션에 대한 수요가 몰리면서 업체들은 새로운 디자인을 속속 쏟아 내고 있다. 골프와 연관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이제는 드레스코드라는 틀에 꼭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모처럼 찾아 온 골프산업 호황이 우리나라 전체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