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寒露)절기 - 섬돌에 국화 가득 피거든 내게도 한 가지 나누어 주구려
조선시대 시인 海原君(해원군) 李健(이건)의 ‘乞菊花’(걸국화 : 국회에게 부탁함)라는 제목의 4행시 중 마지막 3, 4행의 구절로, 한로 무렵에 만발하는 가을국화를 두고 읊은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앞의 1, 2행도 함께 읊어보면 이 무렵의 계절적 분위기가 더 실감있게 느껴진다.
淸秋佳節近重陽(청추가절근중양) ‘가을이라 중양절이 다가오니’
正是陶家醉興長(정시도가취흥장) ‘바야흐로 술꾼이 취하기 좋은 때로구나’
지난 10월 8일은 한로(寒露)였다.
한로는 항상 양력 10월 8~9일 경이 되며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있다. 이 때는 태양의 황경(黃經)이 195도에 이르는 때다.
한로는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음력으로는 9월의 절기로서 공기가 차츰 선선해짐에 따라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의 시기다.
한로 절기가 되면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오곡백과를 수확하기 위해 농작물을 베고 탈곡(타작)하기에 눈코 뜰새가 없다.
한로는 음력 9월 9일을 기념하는 중양절 (重陽節 또는 重九節, 금년은 양력 10월 7일)과 겹치거나 하루이틀 차이만 날 때가 많다.
이날을 명절로 정하게 된 배경은 음력 9월9일이 1년 중 양수(兩數)가 겹치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양절 풍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중국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큰 명절로 대접받고 있다.
이 날의 세시(歲時)풍습으로 머리에 쉬나무 열매 수유(茱萸)를 꽂거나 높은데 올라가 고향을 바라 본다는 내용이 한시에 자주 등장한다.
한로 경부터 우리나라 산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어디에서나 단풍놀이와 모임이 잦게 되며 연중 가장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작점이다.
3월 삼짇날에 왔던 제비가 돌아간다는 날이기도 하며, 농촌에서 자주 쓰이는 ‘한로가 지나면 제비가 강남으로 간다’ ‘가을곡식은 찬 이슬에 영근다’ 등의 속담도 이 계절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로와 중양절의 절기음식으로는 국화전과 국화주가 있다. 이때 쯤이면 진노랑색 황국(黃菊)이 만개할 때이므로 이것을 따다가 국화전을 부치고 국화주를 담그기도 한다.
담황색으로 진한 향기를 내는 유자(柚子)를 수확하는 철이며 유자로 만드는 유자화채도 유명한 절기음식이다.
또 한로와 다음 절기 상강(霜降) 무렵에는 서민들의 보양 시식(時食)으로 추어탕(鰍魚湯)이 있다.
‘본초강목’ (本草綱目)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아주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을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고기라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고 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