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박병대·고영한, 모두 혐의 부인
양승태, 직업 묻는 질문에 “없습니다”
고영한 “법정에 서니 가슴이 미어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최종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9일 열린 첫 재판에서 “검사들이 정력적으로 공소사실을 말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근거가 없고 어떤 건 소설, 픽션 같은 이야기”라고 혐의 전부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들은 뒤 시작한 모두진술에서 이같이 말하며 “(공소사실) 모든 걸 부인하고 그에 앞서서 공소 자체가 부적합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추후 변호인 진술 이후 다시 보충 진술을 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은 “구체적 개별 공소사실, 사실관계, 법리 문제를 다투는 취지로 공판준비기일에 변호인 의견서를 낸 걸로 안다”며 “그것과 같은 내용”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지냈던 법정에 서보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제가 여기 선 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리고 사법부에 부담을 주게 된 거 같아 송구스럽다”고 입을 열었다.
고 전 대법관은 그러면서도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보면 제가 노심초사하면서 행정처장으로 직무수행을 했던 부분 모두를 직권남용했다고 적혀있다”며 “법률해석을 둘러싸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헌법적 긴장 상태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것을 부당한 이익도모, 반헌법적 재판개입으로 묘사했다”고 했다.
또 “법관 비위로 인한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대응조치들을 부당한 보고를 하게 했다고 하고, 모든 조직에 있을 수 있는 광범위한 인사 재량에 속하는 부분에 일부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인사 불이익으로 인한 탄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며 “제가 행정처장 재직할 때 벌어진 일이란 사실만으로 제가 직접 지시하고 공모했다고 단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이 이날 법정에 나오자 두 전직 대법관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우했다. 구속 상태지만 수의를 입지 않고 양복 차림으로 나온 양 전 대법원장은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법정에 나온 것은 지난 2월 보석 심문 이후 92일 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자신의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직업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도 직업이 없다고 하자, 재판장은 “무직으로 하겠다”라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 역시 같은 대답을 한 뒤 자리에 앉아 기록을 보거나 간략한 메모를 하기도 했다.
재판장은 수십년 동안 재판을 한 이들을 상대로 주소 변경 고지 의무 등 재판 절차를 꼼꼼하게 공지했다.
이날 재판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인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됐다. 수십명의 시민 방청단과 취재진 등이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 개입 혐의, 법관 부당 사찰 및 인사 불이익 혐의,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및 동향 불법 수집 혐의,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혐의 등 47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기소된 직후 보석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실행에 옮긴 혐의로 먼저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60·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속행 공판도 같은 시각 다른 법정에서 별도로 진행 중이다.
최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