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목숨도 못지키면서 어떻게 통일 주장” 비판 여론
정부, 기초생활보장 확대, 복지멤버십 도입 등 뒤늦은 조치
지난 7월 31일 숨진 뒤 수개월 만에 발견된 북한이탈주민 출신 모자(母子)의 비극 이후 정부가 기초생활보장 확대, 복지멤버십 도입 등 뒤늦은 후속 조치를 발표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는 비판의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이미 숨진 지 수개월이 지난 상태로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발견 당시 집안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던 점에 비춰 아사했을 가능성을 염두했다.
이 사건으로 정부의 복지정책 사각지대와 탈북민 관리 소홀 문제가 여전하다는 사회적 문제가 제기됐다.
또한 전문가들은 탈북민들 스스로 정부나 지자체의 관리대상이 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 대책 마련이 녹록치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8월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앞에 마련된 한모(42. 여)씨와 아들 김모(6. 남)군의 분향소를 찾아 “죽기를 각오하고 살기 위해서 왔는데 이렇게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점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분향소를 방문해 고인에게 조의를 표한 뒤 북한이탈주민들로부터 한씨의 사연을 들었다. 분향소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조문객 10여명이 모여 황 대표에게 탈북민의 어려운 사정과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한 탈북민은 황 대표에게 “(탈북모자 사망은) 문재인 정권이 빚어낸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며 “모든 공직자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속에 탈북자를 배제했다”고 성토했다.
한씨에 대해 잘 안다고 주장한 다른 탈북민 남성도 “한씨는 그냥 돌아가신 게 아니고 통일부, 구청, 주민센터에도 찾아갔다고 한다.
장애아동을 맡기려고 해도 돈을 벌어야 할 남편이 중국에 있다고 하니까 이혼서류 떼어오라고 했다고 한다”며 “사각지대 놓인 국민들은 왜 방치하나. 문 통 사람이 먼저라고 했는데 왜 외면하나”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탈북 모자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정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결국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굶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
탈북민이 서울시와 자치구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은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경찰청 등을 거치고 난 뒤부터다.
탈북민은 입국 후 국정원, 경찰청 등으로부터 관계기관 합동신문을 받고 이후 사회적응시설인 ‘하나원’으로 신병이 이관된다. 하나원은 12주(406시간) 동안 심리안정, 우리 사회 이해 증진, 진로지도 상담, 기초 직업훈련 등을 제공한다.
하나원을 수료한 탈북민에게는 초기정착지원으로 가족관계 창설, 주거 알선, 정착금 지원 등이 제공된다.
영구, 국민임대주택(2년간 임대차계약 해지불가) 입주권과 함께 주거지원금(1인세대 기준 1600만원, 2~4인 2000만원)이 제공된다. 정착금으로 기본금(1인세대 기준 800만원, 2인세대 1400만원, 3인세대 1900만원 등) 외에 지방거주 장려금, 취약계층 보호 가산금 등이 지급된다.
탈북민이 대학진학을 희망할 경우 특례입학이 제공된다. 또 중.고교와 국공립대 등록금이 면제되며 사립대 학비는 50% 보조된다.
탈북민의 취직을 위해 직업훈련, 자격취득, 취업장려금이 제공된다. 자산형성을 위해 미래행복통장(근로소득 중 저축액에 대해 정부가 동일 금액을 매칭해 지원)을 가질 수 있다.
정착 후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면 자치구 등 기초지자체 등에 요청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서 생계급여를 받을 수도 있다.
이처럼 정착 관련 제도가 비교적 촘촘하게 마련돼있지만 정작 탈북민들은 제도상 혜택을 받기를 꺼리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거주지 보호기간인 5년이 지난 탈북민은 당초 머물던 곳에서 벗어나 탈북민이 아닌 한국 국민으로서 살아가길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5년이 지나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경우라도 가능하면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 탈북민 지원 담당자는 “서울시내 북한이탈주민 지역적응센터(하나센터)에 5년 넘게 관리할 수 있지 않냐 물어보니 오히려 (관리를) 원치 않는 분들이 많다”며 “‘'언제까지 북한이탈주민이란 낙인을 갖고 있어야 하냐’면서 남한 주민으로 살고 싶은데 왜 자꾸 관리하냐고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행법상 서울시로 전입한 탈북민을 하나센터를 통해 관리하는 기간은 5년”이라며 “기간이 지나면 어떤 분들은 탈북민이라는 사실 자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인지 감시당한다는 느낌 때문인지 연계를 끊으려고 하는 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 관계자도 “탈북민이 초기 정착할 때는 지역에서 이웃들과 어울리겠지만 거주지를 옮길 때도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자치구 탈북민 지원 담당자는 “북한이탈주민이 우리나라에 온 뒤 5년에서 10년이 지나면 우리 국민과 마찬가지”라며 “이분들도 자신을 북한이탈주민으로 보는 시선을 안 좋아한다. 그냥 우리 국민으로 보는 게 맞다”고 견해를 밝혔다.
사건 이후 정부는 한가지 제도만 신청해도 신청 가능한 모든 복지사업을 안내하는 ‘복지멤버십’ 도입 시기를 계획보다 7개월 앞당겨 2021년부터 현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복지멤버십은 복지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신청 가능한 사업을 전부 안내해 원하는 사업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 신청 체계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을 신청하면 개인정보제공 동의를 받아 신청인이 받을 수 있는 다른 사업이 있는지 확인, 복지사업을 패키지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아동수당 신청 때 소득인정액이 0원으로 확인됐던 관악구 북한이탈주민이 다른 복지제도를 안내받지 못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복지부는 보고 있다.
통일부도 탈북민 모자(母子) 사망 사건과 관련해 탈북민 취약계층을 전수조사하고 기초생활보장 특례 대상 및 기간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강화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 대책협의회(탈대협) 전체회의를 개최해 안타깝게 돌아가신 탈북민 모자를 애도하고, 탈북민 생활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유관부처 공동으로 수립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탈북민 취약세대 전수조사를 실시해 경제적 곤란?질병?고립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민을 찾아내기로 결정했다.
통일부는 현재 약 3만3200명의 탈북자 중 약 10% 내외인 2000~3000명이 전수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잠정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탈북민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고령 노인층, 장애인 가정, 한 부모 가정, 기존에 기초생활보장을 받다가 탈락했거나 완료된 분들을 중심으로 조사하려고 한다”며 “복지부와 실태조사 결과를 비교해 위기가구를 지정하고 안 되더라도 잠재적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고위험 위기가구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탈북민 기초생활보장 특례 대상 및 기간도 확대된다. 기존에는 탈북민에게만 적용되고, 근로능력에 관계없이 3년이었던 기준이 ‘탈북민이 포함된 가구’로 확대되고 기간도 5년으로 늘어난다.
그동안 탈북민들은 6개월간 기초생활보장 대상이었고, 그 이후에는 신청 후 증명이 되면 3년까지 혜택을 줬지만 대상과 기간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탈북민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 안전망을 좀더 촘촘히 짜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곡동에 거주하는 김 모씨(63세)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을 위해 북미대화, 남북대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사선(死線) 넘은 탈북 주민들의 소중한 목숨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통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면서
“몇 달 전 노년신문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민들이 북한으로 압송될 처지에 놓여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탈북민의 생활대책과 그들의 인권 먼저 챙기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현주
기자oldage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