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가 보건복지부 반대에도 어르신 공로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자치구들이 동요하고 있다.
‘현금 복지’의 파급력을 잘 알지만, 재정여건상 대부분 자치구가 시도할 수 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중구의 ‘어르신 공로수당’은 65세 이상 기초연금·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만1천여명에게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구 예산 156억원이 든다. 이는 중구가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있고 인구수가 적어 가능한 일이다.
다른 구들은 중구의 정책을 불편하고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당장 중구와 맞닿은 성동구는 좌불안석이다. 한 아파트 단지는 4개 동 중 3개 동은 중구, 1개 동은 성동구에 걸쳐 있어 일부 거주민은 공로수당을 받고, 일부는 받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 상황이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중구의 ‘어르신 공로수당’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정 구청장은 “주민 입장에선 같은 세금 내고 저기는 10만원을 더 받으니 불평등하다는 것”이라며 “결국 우리도 옆 자치구도 다 할 수밖에 없고, 나중엔 지역 특성과 상관없이 퍼져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금복지의 목적은 소득재분배인데, 지금은 어디에 살면 받고 어디에 살면 못 받아 오히려 소득불균형이 일어나는 상황”이라며 “중구청장이 공약을 지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대로 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양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구청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현금복지는 중앙에서 하고 지방은 맞춤형 서비스 복지를 하게 해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야만 다음 구청장이 현금복지 공약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고심이 깊어지는 자치구는 성동구 뿐이 아니다. 공로수당 지급이 시작되면서 소식을 듣게 된 주민들이 ‘왜 우리 구는 수당이 없느냐’는 항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 여력이 떨어지는 자치구로서는 주민의 요구를 외면하기도, 현금성 정책을 따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재정자립만 된다면 자치구가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다”며 “그러나 현재 자치구 예산은 대부분 중앙정부에 종속돼 있다. 공로수당을 둘러싼 논쟁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고교무상급식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25개 구 중 9개만 참여했던 것도 구마다 재정여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16개 구는 “여건이 안된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왜 우리 구는 안하냐”는 주민들의 항의에 결국 한달도 채 안돼 25개 구가 모두 고교무상급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일부 구청장은 공로수당과 같은 지자체 현금복지가 적절한지를 공론화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과연 10만원을 더 드리는 게 어르신을 위한 행정인지 의문이 든다”며 “어르신들께 더 필요한 건 일자리나 건강 복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현금성 수당은 중앙정부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재정자립률이 떨어지는 자치구가 ‘퍼주기 정책’을 하는 것은 반대”라고 했다.
이희곤 기자